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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Song] Whalien 52

52Hz의 소리를 내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


 처음에 이 제목을 봤을 땐 혹시 오타가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아는 영어단어는 alien 뿐이었으므로. 그런데 가사를 보고 고래라는 주제를 발견하고 나선 감탄하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조합을 잘했을까. 고래와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섞어서 '외로운 고래'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럼 52라는 숫자는 무엇일까? 단 한 번의 단순한 구글링을 통해 나는 또다시 이마를 짚었다. 아 방탄 너네 정말... 멋있어서 말이 안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1989년 미국의 한 해군기지의 수중음향탐지체계에 낯선 소리가 잡혔다. 52Hz의 이 낮은 소리의 정체는 어떤 잠수함도 아니었다. 이거 고래 같은데. '고래다'가 아닌 '고래 같은데'라고 한 이유는, 보통의 고래들의 소리는 15~20(혹은 13~25)Hz에 속하기 때문이다. 겨울마다 나타난 이 52Hz의 노래는 단 한마리가 부르는 것이었음을 2004년 한 해양학술지는 밝혔다. 52고래라고 이름 붙여진 단 하나의 개체는 다른 고래들과 소통할 수 없다. 그들은 이 고래가 내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다른 소리를 내는 고래. 같은 종의 고래들 사이에 조차 속하지 못하는 고래. whalien 52.

 방탄소년단을 알고 그들의 노래를 죄다 끌어모아 플레이 리스트에 넣어뒀을 때 사실 이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슈스비를 플레이하면서 제대로 들어봤다. '음, 가사 잘 썼네'정도가 첫 감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 수록 좋아졌다. 랜덤으로 재생되는 걸 듣는 데에서 일부러 이걸 들으려 뮤직앱을 켜는데 이르렀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 정도였다. 여느 월요일과 똑같이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햇볕이 유독 뜨겁다고 느끼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재생시켰다. 걷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었기에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역전의 건널목에서 길고 긴 빨간불을 응시하고 있을 때, 남준이의 랩 파트가 시작됐다.


어머니는 바다가 푸르다 하셨어
멀리 힘껏 니 목소릴 내라 하셨어
그런데 어떡하죠 여긴 너무 깜깜하고
온통 다른 말을 하는 다른 고래들뿐인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 왜?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이 가사의 어느 부분이, 내 마음의 어느 부분을 건드렸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온통 다른 말을 하는 고래들 뿐인데. 온통 다른 말을 하는 고래 뿐인데. 다시 생각하니 이 부분이었다. 이 문장이 나를 울게 했다.  

 자취를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묻는 말은 '힘들지 않냐,' 혹은 '외롭지 않냐' 였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 마다 나 또한 의문이 생기곤 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 외로움을 느끼는 건가? 나는 당최 그 외로움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밥도 혼자 먹는데 편하고 영화도 혼자 보는게 편하다.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과 사적인 대화를 나눈 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런 내게 누가 외로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늘 그렇듯 'No'이다. 그런데 왜? 

 52고래는 소리를 낸다. 52Hz의 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매 겨울마다 감지되는 이 노래는 다른 고래들에겐 전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말도 노래도 아닌 그저 의미없는 소리일 뿐이다. 식상하게도 이 대목에서 김춘수의 '꽃'이 떠오른다. 꽃이 되지 못하는 이름 없는 몸짓. 무의미한 소음일 뿐인 52고래의 노래에 대한 답가는 들려오지 않는다. 있는 힘껏 불러도 닿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닿지 않는 노래 따위 그만두기로 한 것 같다. 

 자기 책상 서랍에 뭐가 들어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나 조차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마음의 서랍을, 방탄이들의 노래가 열어본 것이다. 그 한 구석에 있던 외로움을 끄집어내 보여주었다. 다른 말을 하고 있는 다른 고래들 사이에서 노래하기를 포기한, 나 조차 몰랐던 나를 울렸다. 우린 노래부르고 있어. 내일에 닿을 때까지. 지구 반대편까지 닿을 때까지. 내 헤르츠를 믿으면서. 방탄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뿐인데 나는 그 가사들이 내게 함께 불러보자 손을 내미는 것으로 느껴졌다. 

 꽤나 예전부터 누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내 이름으로 책을 한 권 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큰 고민 없는 대답이었는데 공무원이니 대기업이니 하는 직업을 대는 것 보다 이 편이 여러 잔소리들을 피할 수 있어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꿈이 나의 외로움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는 생각을 구체화해서 타인에게 전달하는 도구다. 언어를 나타내는 방식에선 말보다는 글이 좀 더 정교하게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나는 나도 깨닫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 내 이야길 들어주면 좋겠어요. 내 생각을 이해해 줬으면 해요'하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포기하지 않았나보다. 이해받지 못할 말 따위 이제 그만 둬야지하고 입을 다물었는데, 더 더 깎아내고 다듬어서 전해보려고 그랬나보다. 내 헤르츠가 다른 고래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너희가 너희의 노래로 알게 해 줬어. 너희의 헤르츠가 내게 닿았어. 내 모습도 보지 못했던 눈먼 고래였던 내가 너희를 보게 해 주었어. 포기하지 않아줘서, 그만두지 않아줘서 정말 고마워.

 나보다 참 어린 아이들인데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운다. 정말 라이브인가 의심스러운 멋진 무대를 만들고,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하기까지 너희가 해온 노력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게 했을까. 슈가가 하루에 한 곡은 만들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노력하지 않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외로운 고래였을 방탄이들은 이제 지구 반대편까지 닿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런 방탄이들을 보면서, 나도 슬며시 내 헤르츠를 전해보고 싶어졌다. 3천자도 안되는 짧은 글을 통해서라도. 


Lonely lonely lonely whale
이렇게 혼자 노래 불러
외딴 섬 같은 나도
밝게 빛날 수 있을까

Lonely lonely lonely whale
이렇게 또 한 번 불러봐
대답 없는 이 노래가
내일에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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